장비를 바꾸기 전에,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부터
음악을 하다 보면 사고 싶은 장비가 계속 생긴다. 새 마이크, 더 좋은 스피커, 누가 좋다고 하는 악기. 지금 작업이 마음에 안 들 때는 특히 그렇다.
그런데 장비를 바꾸기 전에 먼저 생각해봤으면 하는 게 있다. 나는 지금 음악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정확히 어디에서 막히고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좋은 장비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음악보다 장비를 먼저 생각하기 시작하면, 정작 연습해야 할 부분이 잘 안 보인다는 얘기다.
좋은 소리와 좋은 음악은 다르다
좋은 악기와 장비를 듣고 감동할 때가 있다. 나도 소리를 좋아하고, 믹스하는 일을 하니 그 차이에 관심이 많다.
그렇다고 좋은 소리가 좋은 음악까지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연주가 흔들리는 부분, 노래의 표현이 부족한 부분을 장비가 전부 대신해줄 수는 없으니까.
내가 현장에서 만나는 연주자와 가수들은 경력이 쌓여도 연습을 한다. 해야 할 일과 책임질 일이 많으니 학생 때처럼 긴 시간을 쓰지는 못해도, 연습 자체를 그만두는 건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데뷔를 했다는 이유로, 앨범을 냈다는 이유로 몸으로 익혀야 하는 일이 끝나지는 않는다. 새 장비를 알아보는 시간만큼 지금 가진 악기를 만지고 있는지도 한번 돌아볼 일이다.
믹스하는 사람과 연주하는 사람의 우선순위
어떤 장비부터 사야 하냐고 물으면 나는 먼저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생각한다.
음원의 최종 소리까지 판단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듣는 쪽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나 역시 투자를 한다면 스피커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무엇을 바꾸고 있는지 들려야 판단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대로 연주를 녹음해서 전달하는 사람이면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 자기 연주를 잘 담을 수 있는 녹음 환경이 더 직접적인 일이 된다. 건반 연주자라면 본인이 내고 싶은 소리를 가진 악기가 먼저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작업실에 있는 장비를 그대로 따라 산다고 내 작업의 순서까지 같아지지는 않는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 맡은 일을 하기 위해 장비를 모은 것이다. 나는 내가 맡은 일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
나에게 좋았던 장비가 모두의 정답은 아니다
나도 주변에서 사운드를 잘 만든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어떤 스피커를 쓰는지 관심 있게 봤다. 그 영향을 받아 제네렉을 쓰게 됐고, 바꾼 뒤 믹스에 대한 칭찬을 더 듣기 시작했다.
그건 내 경험이다. 같은 브랜드를 사면 누구나 같은 결과를 낸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무엇을 듣고 어떻게 판단했는지까지 장비 이름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으니까.
오래전 KOBA에서 베이어다이나믹 T1을 청음했을 때도 인상이 강했다. 스피커를 듣고 나온 뒤였는데도 헤드폰에서 또 다른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내게는 좋은 소리를 듣는 즐거움을 떠올리게 하는 모델이다.
다만 그때 청음한 기기의 세대와 지금 판매하는 모델을 같은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예전의 인상만으로 현재 제품의 소리까지 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청음기는 관심을 갖는 계기 정도로 보고, 자기 기준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구매 이유를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을까
장비를 사기 전에 이렇게 물어보면 좋겠다. “이걸 사면 내 작업에서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지?”
내가 만든 소리를 더 잘 판단하고 싶은 건지, 내 연주를 더 잘 녹음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예뻐서 자주 손이 가는 악기를 갖고 싶은 건지. 이유는 서로 달라도 된다. 마음에 드는 악기 덕분에 더 자주 연습하게 된다면 그것도 본인에게는 의미 있는 선택일 수 있다.
다만 그 이유를 알고 사는 것과, 유명한 브랜드니까 내 음악도 좋아질 거라고 기대하며 사는 것은 다르다.
오늘은 장바구니에 담아둔 장비 하나를 떠올리고, 그걸로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한 문장으로 적어봤으면 한다. 그 문제가 지금 가진 장비로 연습하면서 나아질 부분인지도 같이 생각해보고.
좋은 장비를 갖는 기쁨도 좋다. 그 장비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는 음악가가 되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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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언급한 T1의 현재 연결 상품이다. 과거 청음한 제품과 동일 세대라는 뜻이나, 이 3세대 제품의 실사용 후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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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재_꼰대레코드 유튜브: https://www.youtube.com/@GGondae_therec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