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 버튼 누르기 전에 — 레퍼런스 곡부터 정해라
작업을 시작할 때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 음악 장비를 어떤걸 쓰느냐다. 그런데 정작 결과물의 방향을 가르는 건 장비가 아니라 도착지를 정했느냐다.
레퍼런스가 없으면 길을 잃는다
목적지 없이 운전을 시작하면 아무리 좋은 차를 몰아도 헤맨다. 믹스도 똑같다. “좋게” 만들고 싶다는 건 방향이 아니다. 누구의, 어떤 곡처럼 들리고 싶은지를 한 곡으로 박아두면, EQ를 깎을지 컴프를 더 걸지 같은 결정이 훨씬 빨라진다. 음악은 여러개의 정답이 있다. 나는 나만의 구분 짓는 방법들이 있는데, Lo-fi와 Hi-fi로 나누어 음악을 빈티지하게 가야할지, 해상도 있게 가야할지 생각하기도, 리얼악기 기반, 소스악기 기반으로 나누기도 한다. 넓은 공간과 좁은 공간으로 나누기도 하고, 보컬이 중심 또는 악기 중심의 사운드로 나누기도 한다.
당신이 원하는 정답과 내가 원하는 정답이 전혀 다른 방향일지도 모른다. 이건 전 세계의 엔지니어와 전 세계의 뮤지션이 겪는 일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나는 근본적으론 노래로 잘 되었었던 사람이다보니, 다른 사람보다 보컬을 크게 잡는다. 그리고 이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클라이언트도, 좋게 생각해주는 클라이언트도 있다.
레퍼런스가 없다면, 나 역시 나만의 정답으로 믹스를 할 지 모른다. 악기 중싱의 빈티지하고 좁은 공간의 락사운드. 당신이 원하는게 해상도 높은 넓은 공간의 팝사운드라면, 우리는 같은 음악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 있어서는 당신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의 음악이니까. 그 음악을 제대로 다른 작업자에게 설명할 수 있게 레퍼런스는 무조건 필요하다.
설명을 위한 대화 수단
난 다른 작업자와의 소통을 위해 가사 레퍼런스, 편곡 레퍼런스, 사운드 레퍼런스를 모두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원하는 음악은 머리에 확실히 있지만, 이것에 가까운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나는 세션을 쓰지도, 믹스를 맡기지도, 비디오를 맡기지도 않았을거다. 오롯이 혼자할 수 있을테니까.
다른 작업자와의 의식의 공유를 위한 가장 좋은 설명이 레퍼런스다. 누구처럼 또는 어떤 음악의 베이스처럼 베이스를 부탁해, 어떤 음악의 가사 같은 슬픈 노래야, 어떤 음악의 사운드처럼 넓었으면 좋겠어 등 음악을 음악으로 비유해주는게 쉽다. 오히려 시적표현이 어렵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쳐주세요, 조금 더 으어 하는 느낌 있잖아요 ? 이런 표현은 의식의 공유가 쉽지 않다. (실제로 들은 말.)
표절이 아니라 기준일 뿐
레퍼런스는 베끼라는 게 아니라 판단 기준을 만들라는 거다. 내 곡이 레퍼런스보다 답답하면 고음을 열고, 시끄러우면 정리하면 된다. 내가 원하던 그림이 맞는지 비교할 대상이 있어야 ‘지금 이게 맞나’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다.
녹음을 하기전에, 악기를 바꾸기 전에, 장비를 바꾸기 전에, 플러그인을 더 사기 전에, 내가 원하는 음악에 대한 많은 레퍼런스를 마련해놓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