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 사운드, 어떻게 전달할까 — 의뢰가 통하는 언어
지난 글에서 레퍼런스는 베끼는 게 아니라 다른 작업자와 의식을 공유하는 대화 수단이라고 했다. 이번엔 그 대화를 실제로 어떻게 하느냐다. 의뢰가 어긋나는 건 작업자가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머릿속 소리가 상대에게 그대로 안 옮겨져서인 경우가 훨씬 많다.
시적 표현은 의뢰가 아니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쳐주세요.” “조금 더 으어 하는 느낌 있잖아요?” 이런 말은 듣는 사람마다 다른 그림을 그린다. 나한텐 또렷한 느낌이어도, 받는 사람에겐 안갯속이다. 의뢰는 시가 아니라 좌표여야 한다.
음악은 음악으로 설명하는 게 제일 빠르다
머릿속 소리를 말로 다 옮길 수 있었다면 굳이 세션을, 믹스를, 영상을 남에게 맡길 이유도 없다. 혼자 다 했겠지.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의뢰를 세 갈래로 쪼개서 레퍼런스를 생각한다.
- 가사 레퍼런스 — 어떤 정서, 어떤 화자인지. “이 곡 가사 같은 슬픔”
- 편곡 레퍼런스 — 악기 구성과 흐름. “이 곡 베이스처럼 굴러갔으면”
- 사운드 레퍼런스 — 질감과 공간. “이 곡처럼 넓고 또렷했으면”
말로 “좋게”라고 하는 것보다, 곡 하나를 던지는 게 백 마디보다 정확하다.
좋다와 싫다를 같이 보내라
레퍼런스를 줄 때 “이거랑 비슷하게”만 보내면 절반만 전달된 거다. 그 곡에서 뭘 가져오고 싶은지, 그리고 뭘 빼고 싶은지를 같이 말해야 한다. 같은 곡을 줘도 누구는 보컬을, 누구는 공간감을 보고 있을 수 있으니까.
정답이 있는 음악은 없다. 어떤 이는 보컬이 큰 게 정답, 어떤 이는 악기가 노래를 덮는 게 정답, Lo-fi한 사운드가 정답, Hi-fi한 사운드가 정답, 넓은 공간이 정답, 좁은 공간이 정답.. 모두 본인의 안에 정답이 있다. 그 정답을 모른 채 타인과 일하는 건 결국은 본인의 음악이 아니라는 것.
정답을 정하는 건 결국 당신이다
레퍼런스가 충분히 모이면, 그때부터 작업자는 당신의 정답을 향해 움직일 수 있다. 음악엔 여러 정답이 있고, 그중 어느 걸 고를지는 의뢰하는 사람의 몫이다. 당신의 음악이니까. 작업자의 역할은 그 정답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거지, 정답 자체를 대신 정해주는 게 아니다.
그러니 의뢰를 넣기 전에, 내가 원하는 음악을 설명해줄 레퍼런스부터 충분히 모아두길 바란다. 말이 통하는 의뢰가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든다.